chapter 64 - 체호프 글 쓰는 마음

갑자기 문득 체호프를 떠올렸다. 그리고 거의 10년 전에 1권만 사두었던 희곡 전집 나머지를 구입했다.

작가로서 언젠가 유명해져서 인터뷰를 당한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건 아니지만서도 아무튼,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가 누구냐는 필수적인 질문을 받는다면 결국은 이렇게 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참으로 많은 작가들을 좋아하고 영향 받았지만... 단연코 체호프입니다.

이건 뭐 <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 대사 패러디도 아니고 흐흐... 말하자면, 진짜 현기증 날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지만, 뭐 그중에 문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긴 하지만... 돌고 돌아 내린 결론은 결국 체호프란 얘기다.

<갈매기>의 트레플레프에 얼마나 나 자신을 감정 이입해 괴로워 했던가... <6호실>의 이해할 수 없을 지경으로 숨막히는 분위기와 어이없이 비참한 결말에 얼마나 주눅들었던가... <벚꽃 동산>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언급만 되는 벚나무 때문에 갑자기 관심도 없던 벚꽃을 좋아하게 되었던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뒤 가장 내 심장을 많이 건드린 작가는 단연 체호프다. 시대 격차가 느껴져 이질감이 들던 19세기 소설보다 불과 얼마 뒤인 20세기 초에 걸쳐 있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었으며, 내가 고민하던 실존 문제를 짚어내 주는 작품을 찾을 수 있었던 작가.

그 시절 열병을 앓으며 소설과 희곡을 몇번이고 정독한 뒤, 갑자기 열병이 나은 것처럼 오랜 세월 체호프 정독하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외울 정도로 깊이 영향을 받았기에 더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체호프란 존재 자체를 잊은 적은 없었으니까.

이번에 구입한 희곡을 다시 읽으며, 새삼 감탄했다. 어쩌면 이렇게 인간을 섬세하게 그릴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도, 단 한 사람도 허술하게 배치되지 않았음이 놀라웠다. 무대에서 직접 감상한 작품은 <벚꽃 동산>뿐이지만 정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작품들 공연도 꼭 감상하고 싶다.

등장인물들이 지나온 과거에 갖는 회한, 그 때문에 갖는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 그 감정이 다시금 나를 건드린다. 잊고 있었던 것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 향기로 온통 뒤덮을 것만 같은 대기를 느끼며, 그 옛날 <벚꽃 동산>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들떠 잠이 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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