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2 - <덩케르크> 글 쓰는 마음

2012년이었던가...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르로 개봉해서 여러모로 비교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터스텔라>도 물론 명작이었지만 <그래비티>가 워낙 압도적인 걸작이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조용히 <그래비티>의 손을 들어줬었다.

이번에 드디어 놀란 감독이 <그래비티>에 맞먹는 걸작을 내놓은 것 같다. 다른 것 다 제거하고, 오로지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절박함에 집중한 작품. 그런데 이게 실화에 바탕을 둔 내용이니... 모골이 송연해짐과 동시에 숙연해지고,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위대한 승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생존에 대한 위대한 찬가가 이렇게 탄생했다. 늘 그렇듯 픽션은 현실을 이기지 못함을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다.

투항을 권고하는 삐라가 날아 내려오는 아무도 없는 시가지의 첫 장면에서 느닷없이 가해지는 총격으로 시작하여, 달리고 헤엄치고, 발버둥치고, 울부짖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늘 그렇듯, 전사자 xx명 중 한 명으로 집계되고 말 그런 최후를 맞이하는 인간들이 도처에서 쓰러진다.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아! 하는 빤한 생각마저도 스쳐갈 겨를 없이... 이런 게 바로 전쟁이라는, 전장의 한복판이라는 것이겠지. 내가 그 한복판에 있다 빠져 나온 것처럼 내내 벌벌 떨었다... 정말이지 전쟁이란...

<인셉션>에서 부렸던 시간의 마법을 놀란은 다시 한번 선보인다. 림보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결과적으로 전체적으로 흐른 시간은 더 길어지는, 그 때의 마법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덩케르크 탈출 작전을 다루는 아주 적절한 극작법이었다.

잔교에서의 1주일, 선박에서의 하루, 전투기에서의 1시간...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 발버둥치는 잔교에서의 1주일은 왜 그렇게 아득하게 길게만 느껴지던지, 구출하러 달려가는 선박의 하루 행적은 왜 그리도 느리게만 느껴지는지... 그리고 공중에서 이들을 엄호해야 할 전투기의 1시간은 급박하지만 왜 이렇게 뜻대로 안 풀리는지... 모든 시간이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인셉션>에서 선보였던 시간의 마법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긴장감을 탄생시킨다.

왜 죽어가는 사람 모두를 살리지 못하는가?

철없던 시절에 이런 생각을 하며 안타까움에 몸부림쳤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대답을 알고 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는 모습이 바로 우리를 움직이는 거라고.

그런 집념으로 그 많은 민간 선박이 덩케르크 해변을 뒤덮었던 것이리라. 모두 다 구할 순 없지만, 모두 다 잃는 것보단 낫다는 집념으로.

그런 사명감이 있었기에 전투기 조종사는 임무를 마치고 조용히 인적 없는 곳에 불시착하여 적군의 포로가 되는 것을 택했으리라.

내가 쓰는 작품은 인간의 어두운 면모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고, 그것도 결국 나만의 색채기에 딱히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시나 인간의 생존에 대한 위대한 찬가를 마주하게 되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전혀 다르지만 결국은 인간을 다루는 같은 작업이니까.

<덩케르크>는 그런 작품이다. 살아 돌아왔으면 그걸로 충분한 거라고 조용히 극찬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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