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1 - 동유럽 3개국 예술 기행이랄까... 글 쓰는 마음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3개국을 다녀왔다.

뭐 남들 다 가는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코스를 밟다 온 셈이긴 한데, 그래도 모처럼 마음 편하게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주변 환경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음미하는 시간을 원없이 즐기다 왔다. 굳이 규정 짓자면 정원 산책 기행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정원이 많은 고도에 갔으니, 게다가 계절도 계절인 만큼 녹음이 우거지고 온갖 꽃이 만발한 정원 한가운데, 때로는 분수 곁에서 때로는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만 해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심지어 호텔 바로 옆에도 작은 공원이 있었다. 나무 몇 그루만 있어도 새들이 모여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정말 실컷 듣고 왔다.

건물이 낮으니 서울과 비슷한 나무들인데도 더 울창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거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거리 곳곳에 벤치도 참 많이 있었다. 지나가다가 얼마든지 앉아 쉬었다 가라는 배려. 거리에 머물러 있고 싶어지게 만드는 이유들이었다.

전형적인 코스긴 했지만 박물관을 꽤 즐기는 편이라 중요한 박물관은 꼭 들렀고, 들르는 박물관마다 도록은 꼭 챙기다 보니... 대책없이 두꺼운 책들을 한 권 두 권 사 모은 결과, 무려 열 두 권이나 짊어지고 오게 됐다. 정말 무거워서 돌아가시는 줄... 그나마 이동이 3번뿐이었으니 망정이지...

책이 열 두 권이나 되게 된 이유는 역시나 지름신의 작용이 있었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150유로 짜리 타셴사 도감을 무려 15유로, 90 퍼센트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는 걸 보고 흥분한 나머지... 두 권이나 샀다. 700페이지 짜리... 믿기지 않는 할인율에 검색까지 해 봤더니 틀림없는 150유로 짜리 책...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바보가 따로 없겠지...

게다가 가는 곳마다 현지 작가의 원어책을 한 권씩은 사야겠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간 바람에... 체코에서는 카를 차펙의 <R. U. R.>을 샀다. 로봇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선보인 그 책. 그리고 헝가리에서는 산도르 마라이의 책 두 권을 샀다. 사실은 카프카의 고향 프라하에서 카프카 책을 사고 싶었지만, 이미 프라하에는 독일어를 쓰는 사람이 살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는지 체코어 판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빈에서 사려고 시도했지만 <변신>밖에 없어서... 내가 사고 싶었던 건 <성>이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 밖에 어릴 때 재미있게 읽었던 독일 동화 몇 권을 사고 싶었지만... 이제는 현지인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책일 뿐이었다. 그래서 독일어 서적은 입수 실패...

벼룩시장이나 기념품 가게에서 산 소품들을 제외하고는 정말 책만 사 온 여행인 셈이다. 사실은 더 짊어지고 오지 못한 책이 워낙 많아서 아쉽기만 하다... 하아...

프라하 카프카 기념관에서는 어머니께 보여드리기엔 너무 우울한 내용이라(요절한 카프카도 그렇고 일가족이 전부 나치 수용소에서 희생되었으니...) 건너뛰고 기념품만 샀다. 가장 카프카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둘러보다가, 사진은 전부 너무 어설펐고, 그래서 고른 게 카프카 서명이 담긴 마그넷. 마음에 꼭 드는 기념품이었다.

베네치아 무라노 유리 공예의 자랑인 아쿠아리움, 즉 물고기가 담긴 어항이나 수족관 제품을 꼭 갖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손가락만 빨고 있다가 우연히 빈 벼룩시장에서 하나 발견해서 9유로에 득템했다. 베네치아 제품은 아니었지만 아쿠아리움 자체를 갖고 싶었기 때문에 눈에 띄자마자 집어들었다. 금붕어 여섯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한 손에 잡히는 깜찍한 아쿠아리움.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실은 유리 공예로 유명한 프라하에서 뭘 살까 고민하다가 산 문진도 두 개나 있다. 게다가 빈 시내에서 정말 물방울을 떨어뜨려 놓은 것 같은 모양의 문진도 하나 샀고... 내가 암만 책을 좋아하지만 문진만 세 개를 사 오다니... 하아...

쇼핑한 아이템 무게에 치어 지치고, 때로는 일정이 계획대로 안 풀려 또 다시 지치고, 모든 여행이 으레 그렇듯 예측 불허 투성이 여행이었지만, 나름 하고 싶었던 걸 하다 온 여행이라 벌써부터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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