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8 번역 단상 글 쓰는 마음

최근 한강 작품의 영어 오역 예시를 한 블로그에서 보았다. 별로 관심 없는 작가라 수상 이후에도 시큰둥했었는데 파도 타기하다 우연히 들어가 살펴 보니, 이건 좀 문제가 심각했다. 순전히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데보라 스미스라는 번역가는 뭐 한국어 학습기간이 3년이라니 아직까지는 실수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고, 대략 한국어 실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게 참 큰 문젠데, 사람이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솔직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거야 잘 알고 있지만, 아니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드러내는 문제점을 이 스미스라는 번역가가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면 차라리 우직하게, 비록 실수투성이 오역 남발이라도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된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속어나 관용적 표현이라면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조언을 구했어야 한다.

그런데 스미스는 특이한 결론을 도출해 낸다. 아니, 몰라서 그랬던 거 같진 않고... 아무튼 의도가 파악이 되질 않는데, 자기 멋대로 원문을 생략하는 수법까지는 뭐 모르니 건너뛰자라는 생각이었겠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 숱하게 많이 멋대로 자기가 작문을 해서 끼워넣은 걸까? 해적판이 난무하던 관행이 남아 있는 한국 번역계에서 실력이 안 되니 마구잡이로 원문을 잘라내는 수법은 많이 봤지만, 자기가 작문을 해서 문장을 끼워넣는 건 처음 보는 경우라 대략 난감이다.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정반대의 수법을 구사하는 건 빼박 진짜로 모른다는 사실의 자백인지라,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도대체 이게 무슨 만행이람? 하는 황당함이 가시질 않는다. 자기가 모르니 독자들도 모를 거란 짐작으로, 여기에다 내가 친절하게 아주 자세한 설명을 끼워 넣어 주어야지! 하는 야심찬 시도였을까? 그런데 문제는 사족에 불과할 뿐 별로 성공적이지도 못하다는...

스미스의 영어 문장이 어떤 수준인지는 네이티브가 아닌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위 블로그 주인장이 링크해 준 한 비평을 읽어보면 의외로 옛날 소설(19세기 소설이라 예를 들더군)을 읽는듯한 구닥다리 어휘와 문체를 구사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본인이 멋대로 끼워넣은 문장 덕분에 내용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보이는 것 같고...

가장 황당하고 웃긴 예시가, 뭐 내가 맞게 해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있는 인물의 옷 색깔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기본적인 의문을 위 비평의 필자는 제시하고 있다... 대략 난감이 가중되는...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해 줬더니, 대뜸 한강은 이건 내 작품이 아니라고 밝히며 수상을 거부해야 하는 거라고 반응한다... 이건 나보다 더 급진적인 ㅎㅎㅎ

난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번역가에게 지적해서 재번역을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한강은 영문학 전공이니 번역된 결과물이 자기 원작과 얼마나 상이한지 당연히 잘 알고 있을 테고, 이후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대부분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바탕으로 중역이 이루어진다는 중대한 사실에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나 한강은 그 어느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 정도로 시선이 주목되는 상을 수상 거부하는 건, 나라면 당연히 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차피 나도 생각뿐이다. 현실은 현실일 뿐...

이 사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초짜 번역가에서 일약 일급 스타 번역가로 급부상한 스미스의 위상이다. 이 정도 위상의 번역가가 계속 번역을 하겠다는데 마다하는 것도 비현실적인 일이고, 오역이나 쓸데없는 만행을 지적하는 건 더더군다나 비현실적이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거니까. 수상 실적이 모든 걸 말해 주는 세계다.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로.

스미스의 저런 만행을 우리는 앞으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게 생겼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수상한 작품들의 목록으로 보건대 맨부커상의 권위에 의문을 가지는 편이지만, 게다가 신설된지 얼마 안된 인터내셔널 부문이란 게 과연 의미가 있는 건가 갸우뚱하긴 하지만... 뭐 그건 상관없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니까.

원작자를 존중하지 않는 번역가의 만행이란 것에 대해... 뭐 해적판 시절에 수도 없이 목격했던 만행이긴 하지만, 번역 선진권이라는 영어권도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랍고 또 놀랍다.


그러고 보니 개인적인 추억 하나.
정식 번역본이 나오기 전 중역판으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다가 견딜 수 없어서 영어판을 알아보던 중, 아마존에서 접했던 분노의 서평... 번역이 거지같다며 정말 살벌하게 까고 있었다. 절대로 이 버전으로는 책을 사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어차피 고전이라 오픈 소스니 여러 번역판이 있었으니까 ㅎㅎ 그 이름 모를 독자의 분노의 서평을 보며 영어권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 거지같은 번역은 마찬가지로 거지같구나, 실소했던 적이 있다.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다, 몇 번이고 새삼 깨닫는 사실이지만... 글쟁이들이 겪는 애환도 비슷하고...

덧글

  • 66 2017/02/02 12:51 # 삭제 답글

    문제가 됐다는 번역 찾아봤지만 직역하면 오히려 매끄럽지 못할 부분을 자연스럽게 재창작 한 것이더군요.
    원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이미지를 더 두드러지게 하도록 번역한 것이었고요. 그걸 무작정 오역이라 하는건 무리입니다.
    몇군데 진짜 오역이 있지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닌듯 하고요.
    1:1 직역으로 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요. 원작을 존중한 번역입니다. 원작자에 대해 존중이 필요한지 의문이네요.
  • 마담보바리 2017/02/15 22:27 #

    원작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니요... 뭐 의견 차라 생각하고 더는 부언은 안 하겠습니다만... 번역은 중간에서 충실한 전달자 역할을 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생각하는 입장이라 그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번역에 의문을 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원작을 존중한 번역이라고 다른 말씀을 하시니... 하고 싶은 말씀이 정확하게 무엇인지요...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