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7 - <루미너리스> 글 쓰는 마음

처음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각 챕터 분량이 앞 챕터의 반으로 점점 줄어들어 마지막 챕터는 불과 1페이지 분량으로 마무리된다는 독특한 구성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등비수열식 구성인 셈이다. 그런데 또 때마침 맨부커 수상작이라길래, 딱히 문학상 수상작에 관심을 가지는 편은 아니지만 겸사겸사 읽었다.

예전에 다른 맨부커 수상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정독은 아니고 훑어보듯 읽어보긴 했지만, 사실 그 작품은 작품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던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순간 당신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란 문구에 도대체 어떤 반전이기에? 하는 궁금증으로, 뭐 어차피 딱히 끌리는 작품도 아니기에 그 반전만 확인했었다. 참으로 비겁한 독서 방식이긴 하지만... 진짜 그것만 궁금했거든. 꽤나 맹랑한, 반전이라기보다는 좀 막나가는 내용이기에 이게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 대충 내용을 살피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끌리지 않아 거기서 접었다. 나는 아직도 그런 파국을 맞이하게 된 두 등장인물의 행동에 의구심을 좀 가지고 있는 편이다. 물론 서로 불꽃이 튀어 저지른 짓이긴 하지만, 솔직히 좀 뜬금없었다. 주인공인 화자도 유혹당했다는 암시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이성을 보는 족족 유혹하는 캐릭터는 평이하고 관조적으로 흘러가는 이 작품에서 굉장히 이질적으로 겉돌며 충돌하는 결과물이라 별로 납득이 가질 않기에. 뭐 누군가의 작품 해석을 보자니 바로 그게 주인공 화자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전개 방식이라 하더라만...

뭐 말하자면 예전에 읽은 맨부커 수상작에 별 매력을 못 느꼈기에 이후로도 다른 작품을 읽어볼 생각은 않고 있었는데, 등비수열식 구성이란 소문에 딱 걸려들었다. 나올만한 건 나올만큼 다 나온 문학계에서 이런 신선한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궁금했다.

꽤 긴 작품이다. 원서로 832페이지, 번역본은 두 권인데 1,100페이지가 넘는 거 같다. 그리고 당연히 1장이 1권을 전부 차지한다. 나머지 11장이 2권에서 점점 절반씩 줄어드는 분량 신공을 발휘한다. 한마디로 구성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독특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내용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소설의 현대적 해석이라기에 대수롭잖게 넘겼는데 그 말이 진짜일 줄이야... 되새겨 보자니 한국 드라마의 원조가 바로 19세기 영국 소설 아니던가. 우연의 연속, 등장인물 모두가 과거에 연결되어 있음, 그들이 모두 한 장소에 모임, 뚜렷한 선악의 대비, 권선징악... 일부는 우리나라 고대소설 특징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특징을 고스란히 차용했다.

내가 내용을 좀 알고 있는 19세기 소설은...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주인공인 고아 올리버가 거리에서 구걸하다가 잃어버렸던 친할아버지를 만난다는 것, 그리고 <제인 에어>에서 제인이 로체스터의 미치광이 전처의 정체를 알고 도피하다가 얼어죽을 뻔했는데 구해준 인물이 자신의 몰랐던 사촌이라는 것 등등... 이쯤 하면 어떻게 돌아가는 시스템인지 알겠지? 딱 한국 드라마 전개 방식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전개 방식을 이 작품이 택하고 있다.

뭐 어차피 작가는 점성술에 의거해서 작품속 배경이 되는 바로 그 날짜의 황도 12궁과 다섯 행성, 태양, 달의 움직임을 가지고 인물간의 관계를 엮어나가겠다고 처음부터 선언했으니까... 이걸 도대체 어떻게 엮어갈까? 그것도 궁금했다. 뭐 진짜 기발하게 전개해 나가긴 한다. 12명의 관련인물과, 이들과 관계를 맺는 7명의 이야기다. 첫 페이지에 아예 인물 설정이 있기 때문에 진주인공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짐작하다시피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두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래도 나름 문학상 수상작이라 기대를 했지만, 문학적 충격을 주는 작품은 아니다. 치밀한 구성으로 잘 쓴 작품은 맞다. 비유하자면, 이 맨부커상이란 게 아쿠타가와상이라기보단 나오키상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은 알아들을 적절한 비유가 되려나... 묘사도 현란하고 적확하다. 상당히 제대로 글쓰기를 갈고 닦은 작가임을 알 수 있는데,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매우 적절하게, 정확한 비유와 어휘로 구사한다. 그래서 분량이 엄청난데도 지루하지 않다. 지루하지 않아도 분량 압박은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이것도 1권을 통째로 차지하는 1장 얘기고, 그 뒤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구성을 고안해 낼 줄 알고 글쓰기도 제대로 익힌 작가인데... 실력을 좀 더 발휘해서 문학적 충격을 주는 작품을 내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대충 읽어나가며 짐작은 했지만 소울메이트 얘기라니... 설득력은 좋았지만, 이런 내용을 기대한 건 아니었어...

중간에 좀 갸우뚱한 전개가 있긴 하지만 이것도 뭐 소울메이트 설정으로 퉁치기로 한 모양이니 받아들인다 쳐도... 등장인물이 이렇게 많은데 신선한 인물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진짜 19세기 소설의 재해석이라니까. 애초에 19세기 소설의 전형성에 재해석할 여지가 있을지도 의문이잖아... 충분히 신선한 인물을 창조할 수 있을 것 같은 능력의 작가가 그 점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너무 착실하게 권선징악의 구도를 밟아나가니까 뭐라 할 말이 없다. 못 쓰는 작가가 이러면 에이, 구성에 자신이 없나 보다, 할 텐데 나름 야심차게 작품을 준비한 것 같은데 현대적 해석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니...

한강 수상을 계기로 세계 3대 수상작이니 뭐니 맨부커상이 우리나라에 많이 홍보가 되었지만, 솔직히 좀 실망했다. 오히려 퓰리처상이 작품 선정에는 더 일가견이 있어 보인다. 너~어무 대중성을 등한시한 마이 웨이라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작품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작품들은. 어차피 수상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니 대중성을 등한시한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이것도 노린 게 아니라 부수적인 효과인지라... 사다가 집에 꽂아두고 안 읽을 독자가 태반일 거란 뜻이다, 흔히 그렇듯. 사실 생뚱맞게 대중과 동떨어지기론 노벨상도 못지 않기 때문에... 말하자면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문학상 수상작 내지 작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좀 검색해 보니 <뉴욕 타임즈>인가에 이 작품에 대한 탁월한 비유가 있었다.

'유리병 안에 정교하게 세공해 조립한 모형배의 예술성을 과연 논할 수 있을까?'

치밀한 구성으로 상당히 잘 쓴 작품이지만 그 이상의 한방이 없다는 뜻이리라. 읽고 난 소감이 바로 그랬다. 그 이상의 한방, 문학적 충격을 주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

그래도 맨부커상 사상 두 가지 기록을 가진 작가니까 차기작을 제대로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최연소 작가이자, 악명높게도 최장 분량 수상작이라는 조금은 웃픈 기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작가가 내 블로그를 읽을 턱이 없겠지만, 재능이 충만한 작가니만큼 건투를 빈다고 말해 주고 싶다.

chapter 66 - 창작 근황 글 쓰는 마음

늘 그렇듯 도통 글이 써지질 않는다. 한때 미친듯이 쓴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어라 써서 장편 소설 한편을 완성한 적이, 정말 내게 있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공허해지고 황망해진다.

제대로 방향만 잡히면 또다시 죽어라 쓰게 되는 시점이 언젠가 오리란 걸 안다. 하지만 좀처럼 찾아와 주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떠올린 구상을 스스로 하찮게 여겨 접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반복될수록 자괴감은 점점 커지고 이제는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내가 구상하고도 너무 멋지고 재밌어 흥분에 겨워 도취되어 닥치는대로 갈겨 쓰던 그 시절은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되새겨 보는 지경에 이르다니, 참 덧없고 덧없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의 내면을 좀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거다.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늘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지 않을까,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슬럼프는 깊고도 끈질기다.

세상은 온통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데 내 내면은 언제나 되살아나 줄지...

봄이다.

chapter 65 - 정봉주 성추행 조작 미수사건 : 한편의 논픽션 소재로 손색없을... 글 쓰는 마음

별 관심 없다가, 분 단위로 촬영한 사진까지 동원하는 알리바이 싸움으로 돌입하면서부터 '아 뭐지, 이거? 내가 젤 좋아하는 상황인데?' 열광하며 집중했다가,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는 바람에 짜게 식었다가... 아무튼 요 며칠 정말 훗날 논픽션으로 집필해도 손색없을 희대의 사건을 실시간으로 잘 감상했다. 미스테리 소설 황금기의 재림을 보는듯한 기분도 들었고 정말 흥미진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중반부에 진상을 어느 정도 파악했고, 이 점은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진상을 짐작도 할 수 없어야 하는 미스테리 소설로서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기에, 미스테리 소설보다는 모든 진상이 드러난 훗날 사건을 복기하며 집필하는 논픽션 소재로 적합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데에서도 드러나는 직업병이란...

뭐 내가 명탐정 놀음을 한 것도 아니고, 나만 맞춘 것도 아니고 많은 이들이 맞췄으니 뭐 대단한 트릭이라 볼 수도 없는 그 헛점이란 의외로 간단하다. 정봉주가 절대로, 심지어는 A양을 보호하고 감싸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A양을 건드리려 하지 않은 점이다. 포와로나 홈즈 식으로 뇌세포 짱돌을 굴린 건 아니고 미스 마플식 접근이라고 해야 하겠다. 평생동안 거의 벗어나지 않았던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목격했던 온갖 인간 군상들을 바탕으로 프로파일러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 그러고 보니 나한텐 그런 샘플이 많이 없으니 이 방식도 아닌 것 같긴 한데... 뭐 단순하다. 내가 만약 정봉주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라는 사고 실험이라고 해야겠군.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물론 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내가 만약 A양을 절대로 성추행한 적이 없다면, 나라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헛소리 작렬하는 A양을 찾아내 족쳤을 거라는 결론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정봉주는 그렇게 할 필요까지도 없었잖아. A가 어디로 도망가거나 사라진 것도 아니고, 카톡 교환한 거 보니 누군지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러니 그냥 A를 고소하면 간단하지. 그러나 정봉주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온갖 핑계를 대긴 했지만 분명히 고소를 꺼리고 있었다. 내가 오죽하면 그래도 저 여자한테 뭔가 남은 감정이 있어서 감싸주려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겠어... 이건 뭐 완전 오해였지만... A는 안 건드리고 괜히 프레시안이나 고소하며 변죽만 울리고... 이걸 본 순간 내 판단은 완료되었다. 아 저 놈이 A와 대질심문하는 상황을, 그 결과 드러날 수사 결과를 두려워하고 있구나...

그리고 며칠 뒤 결론은? 보시다시피다... 논란의 여지야 있겠지만 역시 나라면, 추문이 터지자마자 폰 사용 기록과 카드 내역부터 뽑아봤을 테니까, 카드 사용 내역을 진작에 손에 쥐고 피말리는 손목 걸기 하다 손목이 뎅겅~

요 며칠 인터넷 개싸움을 보며 참 딱한 감정이 든 건, 정말로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저 사람(사건 당사자, 이 경우는 정봉주)은 나와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전제로 사고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나도 많이 살아본 건 아니지만 꽤 산전수전 다 겪은 입장에서 충고하자면, 그런 거 없다. 세상 사람은 거의, 시공을 초월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사고 실험으로 접근해도 별로 오류는 없다. 뭐 드물게 정말로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야 하겠지만, 그런 사람을 대상으로 내가 사고 실험을 하다 실패할 일은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도 더 희박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 정도 오류는 통계학에서도 아마 무시하고 접근할 듯...

정말로 간만에,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흥미진진한 사고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정봉주에게 감사를... 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겠지? 손목 한 번 잘못 걸었다가 완전히 민초로 돌아가게 생긴 정봉주에겐. 손목 한 번 잘못 걸었다가 정말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경우도 있다는 걸로 위안을 삼기를 바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사자가 허락해 준다면 먼 훗날 논픽션으로 집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허락해 줄리가 없겠지... 우리나라가 논픽션 후진국인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당사자들이 허락을 안 해줘요... 쓰고 싶은 소재는 넘쳐나는데...

chapter 64 - 체호프 글 쓰는 마음

갑자기 문득 체호프를 떠올렸다. 그리고 거의 10년 전에 1권만 사두었던 희곡 전집 나머지를 구입했다.

작가로서 언젠가 유명해져서 인터뷰를 당한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건 아니지만서도 아무튼,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가 누구냐는 필수적인 질문을 받는다면 결국은 이렇게 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참으로 많은 작가들을 좋아하고 영향 받았지만... 단연코 체호프입니다.

이건 뭐 <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 대사 패러디도 아니고 흐흐... 말하자면, 진짜 현기증 날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지만, 뭐 그중에 문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긴 하지만... 돌고 돌아 내린 결론은 결국 체호프란 얘기다.

<갈매기>의 트레플레프에 얼마나 나 자신을 감정 이입해 괴로워 했던가... <6호실>의 이해할 수 없을 지경으로 숨막히는 분위기와 어이없이 비참한 결말에 얼마나 주눅들었던가... <벚꽃 동산>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언급만 되는 벚나무 때문에 갑자기 관심도 없던 벚꽃을 좋아하게 되었던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뒤 가장 내 심장을 많이 건드린 작가는 단연 체호프다. 시대 격차가 느껴져 이질감이 들던 19세기 소설보다 불과 얼마 뒤인 20세기 초에 걸쳐 있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었으며, 내가 고민하던 실존 문제를 짚어내 주는 작품을 찾을 수 있었던 작가.

그 시절 열병을 앓으며 소설과 희곡을 몇번이고 정독한 뒤, 갑자기 열병이 나은 것처럼 오랜 세월 체호프 정독하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외울 정도로 깊이 영향을 받았기에 더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체호프란 존재 자체를 잊은 적은 없었으니까.

이번에 구입한 희곡을 다시 읽으며, 새삼 감탄했다. 어쩌면 이렇게 인간을 섬세하게 그릴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도, 단 한 사람도 허술하게 배치되지 않았음이 놀라웠다. 무대에서 직접 감상한 작품은 <벚꽃 동산>뿐이지만 정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작품들 공연도 꼭 감상하고 싶다.

등장인물들이 지나온 과거에 갖는 회한, 그 때문에 갖는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 그 감정이 다시금 나를 건드린다. 잊고 있었던 것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 향기로 온통 뒤덮을 것만 같은 대기를 느끼며, 그 옛날 <벚꽃 동산>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들떠 잠이 오질 않는다...

chapter 63 <The Revival> 글 쓰는 마음

딱히 취향이 주류와 동떨어지진 않았지만, 인디 영화를 즐겨 본다. 인터넷 검색하다 우연히 얻어걸린, 소위 필 꽂히는 작품이 있으면 찾아 감상하는 편이다.

그렇게 얻어걸린 영화다. 90년대에 나왔던 영화 <프리스트>와 비슷한 테마, 즉 성직자의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다. <프리스트>는 이것 말고도 몇 가지 테마를 더 다루고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보단 간결하다.

비평마다 하나같이 배우들 연기를 극찬하던데, 과연 그럴 만하다. 소규모 희곡을 작가 본인이 각색한 작품인 만큼 등장인물은 많지 않다. 그 많지 않은 인물들이 한결같이 보는 사람을 멍하게 할 정도로 예상을 벗어나는, 그러면서도 개연성을 갖춘 캐릭터들인데 이 놀랍도록 멋진 인물들을 배우들이 그야말로 불꽃 열연한다.

우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하는 풋내기 목사 엘라이 역을 맡은 데이빗 라이스달(워낙 철자가 어려워서 대충 읽은 이름이다). 이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정말로 연기 해석 방식이 남다른 배우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풍부하고, 그러나 색다르며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방향에서 접근하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와, 이런 배우가 어디서 튀어나왔지? 놀랍기만 하다. 이대로 무사히 커리어를 쌓아간다면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 감히 예언할 수 있을 정도다.

몇몇 놀라운 순간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처음으로 남자와 관계를 맺는 순간의 원테이크에 담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표정 변화 연기, 그리고 마지막에 충격적인 선택을 하는 순간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설마 그런 선택을 할 줄이야... 확실히 극작이 자유로운 희곡 출신다운 작품이다 싶었다.

그리고 엘라이의 아내 쥰 역을 맡은 루시 파우스트. 참으로 역할다운 성이 아닐 수 없다. 파우스트라니... 아니 실은 메피스토펠레스여야 하려나? 암튼... 맥베스 부인을 방불케 하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비평이 가장 와 닿는다. 엘라이의 선택도 놀랍지만 쥰의 선택 역시 못지 않게 충격적인지라... 다시 한번 희곡 출신다운 작품이다 싶은 캐릭터다. 제아무리 인디 영화라 해도 아무래도 좀 더 대중적이다 보니 끝까지,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는 사실 많지 않다. 희곡은 그 먼 옛날 <오이디푸스 왕>에서 이미 끝판왕 급으로 한계까지 밀어붙여 본 적이 있는 장르다 보니 확실히 끝까지 밀어붙이는 쾌감이 있다. 그런 쾌감을 오랫만에 영화를 감상하며 느껴 봤다.

두 배우만 디테일하게 극찬했지만, 다른 모든 배우들이 최상급 연기를 보여준다. 참 좋은 배우들을 잘도 모아놨다 싶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테마는? 뭐라 평하기가 어렵다. 종교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작품인 것처럼 시작한 작품이, 알고 보니 인간의 예측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내면을 다루고 있다. 워낙 극단적인 결말이라 이에 동의할 수 있을지... 엘라이와 쥰이 과연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지...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가슴으로는 동의하기가 조금 난감한 그런 결말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나는 이런 결말을 아주 좋아한다... 순전히 창작하는 입장에서.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미칠 지경으로 부러운 결말이다. 나는 차마 이런 결말을 내릴 용기가... 없을 리가 ㅎㅎㅎ 그냥 아직 안 내렸을 뿐이지... 판만 벌어진다면 얼마든지 이런 결말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