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 어슐러 르 귄 여사 타계 글 쓰는 마음

거장 중의 거장, 탈장르적인 찬사를 받아 왔던 르 귄 여사가 타계했다.

이로써 sf 작가 중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여사일 것이라는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앞서 적었다시피 장르를 초월하여 찬사를 받아온 거장 중의 거장이기에 별 의미없는 바람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사의 작품은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다.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읽고 싶은 책은 곁에 너무 많고 여사의 작품이 아직 레이더망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다. 이제 여사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나니 새삼스럽게 여사의 작품을 읽어볼까, 뒤늦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긴 했다.

찬사란 찬사는 다 받아 왔지만, 2014년인가 했었던 여사의 수상 연설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장르 문학 작가라는 은근한 무시를 제법 받았던 것으로 보이고, 게다가 데뷔 무렵에는 여성 작가라는 사실을 감추자는 출판사의 제안도 받았던 적이 있는만큼, 여성 장르 문학 작가로서 받을 수 밖에 없는 설움을 여사도 피하지는 못했나 보다. 그럼에도 한 순간도 붓을 놓지 않고 작품을 쌓아 올려 전설적인 거장이 되었으니... 글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후예로서 이보다 부럽고 또 부러운 선배도 없겠지.

사실 요즘은 문학 자체를 별로 읽지 않는다. 동종 업계 사람으로서 보태줘야 마땅한 일인데 참... 이러니 소설 안 읽는다고 남 탓을 하기도 민망하다. 과학이나 역사, 인문학 쪽 서적을 많이 읽다 보니, 요즘 레이더망이 주로 이쪽에 꽂혀서 라고, 겸연쩍은 변명을 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긴 하다... 한때 정말 미친 듯이 읽었던 적도 있으니 레이더망이 또 그쪽으로 향하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둘 뿐...

하긴, 정말 문학의 미래란 어떻게 될지 불안하면서도 궁금하긴 하다. 모든 픽션 예술의 뿌리가 소설이란 걸 알긴 하지만, 확실히 이제는 그 뿌리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인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작가들의 지향점이 잘게 나눠진 거라고, 위안삼아 본다. 자기 이름으로 된 영화가 꿈이라면 시나리오를 쓸 것이고, 자기 이름으로 된 드라마가 꿈이라면 드라마 대본을 쓸 것이고,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이 꿈이라면 소설이나 시, 논픽션을 쓰겠지. 물론 내 꿈은 내 이름으로 된 소설을 한 권 내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사와 어깨를 겨룰 수 있을 정도로 거장이 되는 것이고... 그럴 수 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hapter 61 수 그래프튼 여사 타계... 알파벳 시리즈 마지막 Z만 남겨두고... 글 쓰는 마음

일본 추리소설이 휩쓸다시피 하는 국내시장이지만, 관심있는 이라면 알파벳 시리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A is for Alibi> 출간을 시작으로 전 26편이라는 야심찬 계획으로 출발한 수 그래프튼 여사의 시리즈물이다. 주인공은 킨지 밀흔 탐정. 80년대에 첫 출간된 뒤로 시리즈 속 세계관은 첫 작품 배경인 80년대에 머물고 있다. 말하자면 킨지 밀흔이 의뢰받은 26편의 사건 해결 기록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래프튼 여사가 마지막 편은 <Z is for Zero>가 될 거라고 이미 공언한 상태였고 30년 넘는 시리즈의 대장정도 끝이 보이는 듯 했다. 딱 한 번, X에 대응하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결국 <X>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것만 빼고는 <Y is for Yesterday>까지 착실하게 집필을 마치나 싶었는데, 갑자기 발병한 암으로 끝내 마지막 작품 <Z is for Zero> 집필에 들어가지 못한 채 타계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언젠가 읽어볼 생각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한 시리즈라 어떤 작품들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런 큰 그림으로 집필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처음엔 3부작 정도로 계획했지만 결국 구상이 확장되어 25년에 걸쳐 5부작으로 마무리한 <토지>도 그렇고, 일생에 걸친 작가의 인생관 변화가 묻어나오는 그 흔적을 좋아한다. 프루스트가 목숨과 바꿨다고 평가받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언젠가는 완독할 생각이고...

추리소설 황금기 작품에서 가장 못마땅한 것이, 뭐 내가 너무 까다로운 거겠지만... 탐정이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따라 다닌다는 그 우연성 남발이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탐정이 집에 꼼짝 않고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기엔, 아마도 이웃집에서 누군가 살해당하겠지... 집 한 채만 달랑 서 있는 오지에 살지 않는 다음에야...

탐정의 캐릭터가 중요해진 황금기 작품의 특성상 감안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늘 불만이었다. 하다 하다 김전일 시리즈에까지 이런 패턴이 이어졌고... 김전일이랑 미유키가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암만 픽션이래도 멋도 모를 청소년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시신 한가운데에 파묻혀 지내다니...

그런 불만에 대한 대응책으로, 작가들은 마침내 사건이 탐정을 찾아오도록 고안하는데... 바로 사설 탐정의 사건 의뢰 시리즈다. 또는 경찰의 사건 해결 시리즈. 늘 범죄 한복판에 묻혀 사는 이들이니만큼 적절한 선택이었다. 하드보일드의 등장이다.

알파벳 시리즈는 그 장점을 극한까지 활용한 케이스다. 26편이나 되는 사건을 구상해 내겠다고 시도한 자체가 정말 엄청나게 대단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뭐 막 찍어내는 펄프 픽션 시리즈로 따지자면 100편이 우습게 넘어가는 시리즈가 수두룩하지만, 그래프튼 여사는 서두르지 않고 우직하게 한 편 한 편 써내려 왔다. 결국 25편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여사 본인도 유언을 남겼고, 유족들도 대필 작가에 의한 마지막 편 출간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하니, 이제 알파벳 시리즈는 미완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미완성이기에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았으면 한다...

수 그래프튼 여사, 삼가 명복을 빕니다...

chapter 60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글 쓰는 마음

장장 237분이나 되는 이 대작을 과연 언제 봐야 할지, 도통 시간대가 맞지 않아 고심하다가 마침내 감상하게 되었다.

<비정성시>를 볼 때도 느꼈지만, 이 무렵 대만 영화 거장들의 재능은 흡사 러시아 문학 황금기 작가들의 재능을 보는 듯 눈부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 군상,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낭비 없이 각자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 그들이 살아 움직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뿐 작가가 주제를 주입시키려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생생함.

그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인지 자부심일지, 난데없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작중에서 언급된다. 무협지만 줄창 읽던 조폭 보스 청년에게, 어쩌다 얻어걸려 읽은 작품에 등장하는, 함락된 모스크바에 남아 나폴레옹을 제거하고 말겠다는 피에르(읽어보진 않앗지만 맥락상)의 무모한 용기는 어쨌든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무협의 협과도 상통하는 대목일 수도 있으려나? 어쨌든 아직 소년티도 채 벗지 못한 아이나 다름없으니 그 대의명분에 감흥할 수밖에 없었겠지... 제법 적절한 인용이었다.

픽션이란 걸 어떻게 창작해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그러나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뒤늦게야 접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237분이나 되는 시간을 어떻게 채운담? 하는 궁금증이, 뒤늦게 찾아온 이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감상 포인트의 하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 궁금증에 아주 보기 좋게 화답하는 촘촘한 내용이란...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작품이 어디까지 실화를 반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잘은 모르지만 대만 역사상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이라는 사실만 취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창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뛰어나게 재해석한 작품의 면모를 작품 내내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뭐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직접 봐야만 와닿는 말이긴 하지만... 아무튼 놀라운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좌충우돌하고, 얽히고 설켜서 결국 소년이 소녀를 죽이는 파국까지 흘러간다.

소녀는 왜 그렇게 절망적으로 행동했을까? 소년은 왜 소녀를 찌를 수밖에 없었을까?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상황이 이들을 몰아가는 모습을 괴롭지만 지켜보게 만든다. 소녀는 몸을 누일 방 한 칸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비참한 현실을 해소하고 싶었던 걸까?  뭇 남자들이 매료된다는 만화같은 설정을 납득하게 만드는 여배우의 신비한 매력은, 소녀가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발탁되어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연히 이 작품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소녀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자신에게 매료되는 남자들을 마다하지 않고, 떠나간 남자들에게 길게 얽매이지도 않는다. 그저 비참한 현실을 재확인할 뿐이다.

소년은 강제로 야간 중학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망가진 것일까? 소년의 방황하는 내면은, 겉으로는 범생이었던 내 학생 시절과 놀라울 지경으로 비슷하다. 소년처럼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러니 그게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 또래의 평범한 내면을 간직한 소년일 뿐이라는 뜻이다.

드러나는 동기는 결국, 이런 현실이 충돌한 질투다. 오는 남자 안 막고 가는 남자 안 붙잡는 소녀의 비참한 모습이 소년에겐 견딜 수 없었으니까. 소녀는 소년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지만, 과연 이해할 수나 있을까? 막을 수 없는 파국인 셈이다.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던 소녀가 딱 한 번,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사의 마음을 떠 보는 행동을 한다. 난 당신 마음 다 알고 있어요, 대담하게 행동하는데 결혼을 앞둔 의사는 부정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확인했으니 됐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는 소녀의 모습은 여인이었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드러난 소녀의 여인으로서의 모습이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저 소녀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고 감독은 어떻게 연기 지도했을지 심히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아무런 의욕 없이 살아가던 두 청춘이 충돌한 결과가 살인이라니... 인생이란 그런 것일까... 대만 현대사에 대한 은유라는 해석보다도 더 먼저 와닿는 감상이었다...

chapter 59 창작 근황 글 쓰는 마음

이랄 것도 없는 게, 통 못 쓰고 있으니까 하하하...

옛날 말로 붓방아라고 하던데, 암튼 붓방아만 찧으며 머릿속에서 구상은 잔뜩 오가는데 튀어나와 주질 않는다. 아직 나올 때가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 복고풍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선택하는 바로 그 이유, 추리소설의 황금기라는 매력적인 이유때문에 과거 배경이 끌리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시기.

그런데 이글루에도 블로그를 개설한 모작가님이 쓰신 일제시대 경성은 또 딱히 끌리는 배경도 아니어서, 그렇다면 아예 작정하고 192,30년대의 유럽을 배경으로 해서 감쪽같이 외국 작품처럼 시치미 뚝 떼고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영감을 준 건 <일식>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등장한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을 접하고 나서였다. 작품이 취향은 아닌지라 전부 읽은 건 아니지만, 데뷔작부터 아예 일본이 아닌 이국을 줄곧 채택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꽤 인상깊었다. 그런 인상에 쐐기를 박은 작품이 19세기 유럽 예술가들을 등장시킨, 질릴 정도로 두꺼운 소설 <장송>이었다. 질려버려서(ㅋㅋ), 아니 이건 농담이고, 사실은 그다지 궁금한 작가가 아니어서 서점에서 잠깐 훑어보고 말았지만, 쇼팽이니 조르즈 상드니 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쓴 작품의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작가 이름을 확인하고나서는 '역시나, <일식>을 쓴 작가답군' 했었다.

사실 이건 동양권 작가들이 스스로의 작품 세계를 좁힌 자승자박의 결과다. 서양권 작가들을 보면, 아무리 자기 문화의 원류라고는 해도 그리스, 로마부터 시작해서 자유자재로 작품 세계를 구사하니까 뭐. 읽다가 다른 책에 정신 팔려 그만두긴 했지만 플로베르가 카르타고를 배경으로 쓴 <살람보>란 작품은 명불허전, 치밀하기로 유명한 작가답게 카르타고를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해서 감탄하며 읽었었다. 그러고 보니 기억난 김에 마저 읽어야겠네. 아무튼 서양권 작가들은 작품 배경을 선택하는데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얘기다. 그중 끝판왕으로, 요즘 모으기만 하고 읽지는 않고 있는(ㅋㅋ 나란 인간은 도대체 뭘 읽기는 하는 건가?) <로마의 일인자> 시리즈 같은 작품도 있다. 6부까지 출간되서 이제 완간을 앞두고 있는, 한국어판으로 총 21권에 달하는 7부작 로마 공화정 대하소설이다. 작고한 작가가 로마사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세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소설로 읽는 로마사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출판사에서 '이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잊어라' 뭐 그런 식으로 자극적인 광고를 때렸었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인지라... 연구의 깊이에 있어서 시오노 여사는 내공이 한참 모자란다.

이런 덕중지덕 양덕인 케이스도 있고, 더 나아가면 <게이샤의 추억>, <쇼군>처럼, 동양 문화를 나름 치밀하게 연구해서 쓴 작품도 있다. 뭐 오리엔탈리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작품들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집필한 펄 벅의 <대지>가 끝판왕이겠군. 논란은 있었지만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이런저런 잡설이 길어지긴 했는데, 말하자면 황금기 추리소설의 틀을 배경까지 그대로 가져온 작품을 써볼까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게으름도 하나의 이유긴 한데 하하... csi가 판치는 현대의 과학 수사를 혼선에 빠뜨릴 대담한 줄거리를 구사할 자신이 도저히 없기 때문이다... 그냥, 유전자 분석도 없고 자칫 치명적일수도 있는 수면제가 버젓이 상용되며 독극물 관리도 허술했던, 게다가 대저택에 용의자를 잔뜩 모아들이기도 편리한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범죄극을 구사해 보고 싶다는 말이다 하하.

한때 엄청나게까지는 아니어도 황금기 추리소설을 꽤 읽었으니 옛 기억을 떠올리며 한 번 시도해 볼까, 이런저런 구상을 하고 있다...

chapter 58 창작에 자극이 되어 준 영화들 감상평 글 쓰는 마음

형편없는 책 제목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며칠 저기압이었는데, 그 저기압을 없애준 것은 역시나 치열하게 창작한 영화 감상이다...

참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우연히 얻어걸린 경운데, 백만년만에 국제 비평가 연맹 홈피를 방문했다. 여기서 <최악의 하루>를 우연히 득템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또 뭐 비평가 연맹상을 수상한 한국 작품 없나 둘러보다가 홍콩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해피 뻐스 데이>란 작품을 발견했고, 때마침 그 영화가 상영중이라 모처럼 일부러 찾아가 관람했다.

이런저런 개인적 사정이 있기도 했고, 아무래도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린 뒤로는 주로 집 근처에서 영화를 관람하다 보니 서울극장은 정말 언제 가봤던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긴 했지만... 그 관객들 바글바글하던 서울극장의 쇠락은 가슴 아프고 서글픈 일이다 정말... 사업 방향을 전환해 독립영화 전용관을 운영하며 극장 전체도 제대로 다 돌리지 않는 눈치였다. 시사회 팬 미팅을 온 것인지 홍콩 쪽으로 보이는 광동어 구사자 관광객들이 로비에 모여 있는 것 빼고는 정말 텅 빈 분위기였다.

리모델링을 하긴 했는데 어딘지 어수선하고 방향감각 없이 통로가 진행되는가 하면 화장실에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걸 보니... 설립자인 곽모 회장이 사망한 뒤 부인인 영화배우 고은아 회장에게 이젠 극장 운영의 여력이 없어지게 된 건 아닌가 싶고... 물려받을 후계자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냥저냥 현상유지 하는 걸로 별 뜻을 보이지 않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래도 이런 중심가에 독립영화 전용관을 운영하는 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추억이 얽혀 여러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관람객은 단 두 사람뿐이었지만, 영화는 정말 훌륭했다. 우연히 발견해서 일부러 보러 간 보람을 톡톡히 느낀 작품이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막장가족 내지는 괴짜가족 이야기인데,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괴짜들이 모두 한가족이라는 게 말이 돼? 하는 어이없음을 생생한 생명력과 극작술로 설득시키는 작품이다. 온갖 불편한 소재는 다 모아 놨는데 잠깐 불편하긴 해도 이내 몰입해서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놀라웠다.

자식들만 괴짜가 아니라 자식들 배우자도 하나같이 괴짜 내지는 숨겨진 상처나 비밀을 간직한 인물들이어서, 창작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건 무리데스...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놀랍게도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보는 동안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곱씹어 보면 정말 우째 이런 일이, 싶은 일들이 하룻동안 벌어진다.

너무 놀라운 힘을 보여준 작품이라 함께 상영중인, 감독의 또다른 작품 <소통과 거짓말>도 보러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말 발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감독이고 작품이다. 내가 깨지 못하는 한계, 막장이라고도 하고 불편함이라고 하는, 그 경계를 저만치 돌파하여, 이것저것 다 가져왔는데 섞어찌개가 되지 않고 은근한 조화를 이루는, 극작술과 연출력을 모두 갖춘 감독이다. 진짜 차기작이 기대된다...

또다른 옛 메인 극장의 쇠락을 <러빙 빈센트>를 보러 간 대한 극장에서 목격했다. 그 많던 관객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평일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운행하지 않고 매점도 1층만 운영할 정도로 긴축 운영하고 있었다. 국내 유일의 70미리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70미리 시대가 지나가 버렸음을 파악하고 과감히 멀티플렉스를 올렸건만... 그렇게 한 시대가 흘러가 버린 건가 보다.

독특한 제작 기법 때문에 보러 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모네의 수련 시리즈에 푹 빠져 있기 때문에 고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없던 관심을 생기게 만드는 작품이 바로 이 <러빙 빈센트>다.

그의 작품을 재현한 빼어난 영상미도 물론 일품이지만, 본 사람들은 모두 다 느끼듯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에 공개되는 고호의 두 통의 편지 내레이션이다.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가 가슴을 쥐어짜며 세상에 호소하듯 쓴 창작 고백, 영상미를 보러 갔다가 이 고백에 가슴을 얻어맞고 돌아오게 된다. 고호가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열렬하게 그림에 매달렸는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안타깝고 가슴아팠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서, 그동안 고호에 관심이 없었지만, 굳이 싫어할 이유도 없지 않아? 다시 한 번 작품들을 찾아볼까? 하는 미묘한 감상에 빠졌다. 사실 사생활 보정으로 특정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오직 작품만 보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저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되도록 사람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촉촉한 영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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