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8 창작에 자극이 되어 준 영화들 감상평 글 쓰는 마음

형편없는 책 제목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며칠 저기압이었는데, 그 저기압을 없애준 것은 역시나 치열하게 창작한 영화 감상이다...

참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우연히 얻어걸린 경운데, 백만년만에 국제 비평가 연맹 홈피를 방문했다. 여기서 <최악의 하루>를 우연히 득템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또 뭐 비평가 연맹상을 수상한 한국 작품 없나 둘러보다가 홍콩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해피 뻐스 데이>란 작품을 발견했고, 때마침 그 영화가 상영중이라 모처럼 일부러 찾아가 관람했다.

이런저런 개인적 사정이 있기도 했고, 아무래도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린 뒤로는 주로 집 근처에서 영화를 관람하다 보니 서울극장은 정말 언제 가봤던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긴 했지만... 그 관객들 바글바글하던 서울극장의 쇠락은 가슴 아프고 서글픈 일이다 정말... 사업 방향을 전환해 독립영화 전용관을 운영하며 극장 전체도 제대로 다 돌리지 않는 눈치였다. 시사회 팬 미팅을 온 것인지 홍콩 쪽으로 보이는 광동어 구사자 관광객들이 로비에 모여 있는 것 빼고는 정말 텅 빈 분위기였다.

리모델링을 하긴 했는데 어딘지 어수선하고 방향감각 없이 통로가 진행되는가 하면 화장실에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걸 보니... 설립자인 곽모 회장이 사망한 뒤 부인인 영화배우 고은아 회장에게 이젠 극장 운영의 여력이 없어지게 된 건 아닌가 싶고... 물려받을 후계자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냥저냥 현상유지 하는 걸로 별 뜻을 보이지 않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래도 이런 중심가에 독립영화 전용관을 운영하는 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추억이 얽혀 여러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관람객은 단 두 사람뿐이었지만, 영화는 정말 훌륭했다. 우연히 발견해서 일부러 보러 간 보람을 톡톡히 느낀 작품이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막장가족 내지는 괴짜가족 이야기인데,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괴짜들이 모두 한가족이라는 게 말이 돼? 하는 어이없음을 생생한 생명력과 극작술로 설득시키는 작품이다. 온갖 불편한 소재는 다 모아 놨는데 잠깐 불편하긴 해도 이내 몰입해서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놀라웠다.

자식들만 괴짜가 아니라 자식들 배우자도 하나같이 괴짜 내지는 숨겨진 상처나 비밀을 간직한 인물들이어서, 창작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건 무리데스...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놀랍게도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보는 동안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곱씹어 보면 정말 우째 이런 일이, 싶은 일들이 하룻동안 벌어진다.

너무 놀라운 힘을 보여준 작품이라 함께 상영중인, 감독의 또다른 작품 <소통과 거짓말>도 보러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말 발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감독이고 작품이다. 내가 깨지 못하는 한계, 막장이라고도 하고 불편함이라고 하는, 그 경계를 저만치 돌파하여, 이것저것 다 가져왔는데 섞어찌개가 되지 않고 은근한 조화를 이루는, 극작술과 연출력을 모두 갖춘 감독이다. 진짜 차기작이 기대된다...

또다른 옛 메인 극장의 쇠락을 <러빙 빈센트>를 보러 간 대한 극장에서 목격했다. 그 많던 관객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평일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운행하지 않고 매점도 1층만 운영할 정도로 긴축 운영하고 있었다. 국내 유일의 70미리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70미리 시대가 지나가 버렸음을 파악하고 과감히 멀티플렉스를 올렸건만... 그렇게 한 시대가 흘러가 버린 건가 보다.

독특한 제작 기법 때문에 보러 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모네의 수련 시리즈에 푹 빠져 있기 때문에 고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없던 관심을 생기게 만드는 작품이 바로 이 <러빙 빈센트>다.

그의 작품을 재현한 빼어난 영상미도 물론 일품이지만, 본 사람들은 모두 다 느끼듯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에 공개되는 고호의 두 통의 편지 내레이션이다.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가 가슴을 쥐어짜며 세상에 호소하듯 쓴 창작 고백, 영상미를 보러 갔다가 이 고백에 가슴을 얻어맞고 돌아오게 된다. 고호가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열렬하게 그림에 매달렸는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안타깝고 가슴아팠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서, 그동안 고호에 관심이 없었지만, 굳이 싫어할 이유도 없지 않아? 다시 한 번 작품들을 찾아볼까? 하는 미묘한 감상에 빠졌다. 사실 사생활 보정으로 특정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오직 작품만 보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저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되도록 사람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촉촉한 영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chapter 57 최근에 나온 가장 저열한 책 제목 글 쓰는 마음

뭐긴 뭐겠어 <현남 오빠에게>지...

누구나 보자마자 떠올리는 그 단어를 슬쩍 바꾼 거 맞다. 올해의 책으로 수없이 이름을 올린 그 작가의 작품을 표제작으로 올린 이유야 뭐 뻔하지 흥행을 위해서인데... 이쯤 되면 진짜 막말로 책 팔자고 빤쓰까지 벗어던지고 나선 거라고 봐도 되겠다.

관심 없어서 그 화제의 소설은 안 읽었으니 그 소설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고 이 소설집을 제목만 가지고 평하자면, 이런 식으로 특정 집단의 존재를, 그것도 타고난 특징, 즉 바꿀 수 없는 성별 자체를 죄악이라고 떠드는 건 자기들끼리 모여 수다 떨 때나 할 법한 화제 거리인데 그걸 문학이랍시고 턱 내놓았으니 나 참...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겠다.

저 책 제목이 저열한 데다 비겁하기까지 한 이유는, "그 단어 아니거든요?" 내지는 "왜 이래요 촌스럽게? 풍자도 풍자로 못 받아들이는 겁니까?"라는 대답을 마련해 두었다가 써먹을 거라는 점이다. 그렇게 당당하면 돌려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란 말이다, 그러긴 또 싫은가? 저게 풍자면 파리도 새다, 진짜로. 아무거나 나오는대로 휘갈기면 다 풍자야?

나름 치열하게 글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저런 이들이 나와 같은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진짜 환멸스럽다. 아직 책 한 권 못 낸 사람으로서 흥행 코드를 고민해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기도 하지만, 저렇게 빤쓰까지 벗어던지고 나설 생각은 감히 못해 봤기에, 참 얼떨떨하기까지 하다.

문학이란 건 대단한 게 아닐지 모르지만 니들이 그런 식으로 써먹을 정도로 하찮은 것도 아니다. 제발 스스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최소한의 품위와 존엄을 간직하도록 해 봐라, 응? 제발, 제발!!

chapter 56 쓰지 못하는 괴로움 글 쓰는 마음

요 몇 개월, 무던히도 글을 좀 써보려고 애를 썼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우울증 비슷한 상태에 빠져 있다.

처음엔 게으름이 아닐까, 매번 그랬듯 스스로를 한심해 하며 케세라세라 식으로 지나 왔지만, 최근 들어 좀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 싶어져서 조바심이 생겼다. 잠이 많아지고 만사가 다 귀찮고 의욕이 없어지고... 나름 낙천적이진 않아도 평정은 유지해 오던 성격이라 진단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글을 쓰지 못하는, 글이 나와주지 않는 괴로움이 속내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때는 잠이 오면 자고, 의욕이 없으면 없는대로 그렇게 흘려 보내다 보니 어찌어찌 지나간 것 같다.

그래서 해결책은? 뭐긴 뭐겠어 글을 쓸 수 있게 되면 해결되겠지...

하다 못해 든 생각이, 가벼운 기분으로 추리소설이나 써볼까 하는 것이다. 정신적 내지는 육체적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전설이 된 두 사람의 작가를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휙휙 건너 뛰며 제대로 정독을 한 적은 없지만, 그 이유는 다름아닌 주인공 탐정의 장광설 때문인데... 여기까지 말하면 눈치 챌 사람은 눈치 챘겠지만, 바로 반 다인 작품이다. 꽤나 저명한 예술 비평가 출신이니 그렇게 답 없는, 사실 재미만 있다면 장광설도 읽어줄 만은 하지만 솔직히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도 추리와는 1도 관련이 없기에 건너뛰게 되는 작품을 쓴 작가. 반 다인의 추리소설 집필 계기가 바로 지나친 저술 활동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려, 그렇다면 가벼운 글이나 써 볼까 한 거였으니... 문제는 하던 버릇 못 버린다고, 오너캐가 떠드는 내용이 가벼운 글과는 거리가 멀다는 거... 뭐 어쨌든 황금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들을 여럿 발표했다. 본인은 추리소설가라는 직함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결국은 비평가 출신이니 뭐 그러려니... 본인의 자괴감은 예언과도 같은 것인지, 대다수의 다른 황금기 추리소설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많이 잊혀진 존재가 되었으니 비평가로서의 안목은 역시나 날카로운 것이라 할 수 있으려나...

레이먼드 챈들러도 병으로 요양하며 추리소설을 읽다가 어디 나도 한 번... 하고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솔직히 낯 간지러운 문장을 많이 구사했지만 그래도 추리소설의 문학성을 저만치 올려놓은 걸작들을 발표한, 아직도 유효한 전설적인 작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반 다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름 후대에까지 먹어주는 포인트를 잘 알고 있었다고나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작가라 할 수 있겠다.
끌리지 않는 작가라 아직 작품을 정독한 적은 없지만 명성이야 뭐 익히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거부감 비슷한 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간지나는 문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낯 간지럽고 거북하기까지 한 문장 구사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후대의 홍콩 느와르 영화가 베낀 것이지만, 철 지난 홍콩 느와르 영화의 대사를 들으며 느끼게 되는,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그런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니... 정말 손발을 어디다 처리해야 좋을지 모를 것만 같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어째 추리소설을 써 볼까 하며 나름 예로 든 작가에 대한 평가가 둘다 별로네...

뭐 아무튼 결론은, 한때 광팬이었던 기억을 더듬어서 본격 수수께끼 풀이 추리소설을 써볼까 한다는 것이었는데 내용은 삼천포로...

chapter 55 <시인의 사랑> 글 쓰는 마음

본지 좀 됐지만 아직도 잔상이 남았다. 시나리오가 좋다는 칭찬이 자자하기에 보러 갔더니 과연, 감독의 내공이 보였다. 열연한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 했고.

제목은 진짜 지나칠 정도로 흔해터지고 진부하지만, 내용은 절대로 진부하지 않다. 전개 방식이 매번 예측을 빗나간다는 점에서는 <토니 에르드만>을 연상케도 한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서 시의 영감을 얻은 어느 시인의 흔들리는 감정을 묘사한 영화라고 해야겠지만, 이런 류의 원조격이라 할 <베니스의 죽음>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시인이 청년에게 욕망을 느끼기는 하는데, 연민과 뒤섞여 나중에는 종잡을 수 없어진다. 그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간파했으니 청년은 거칠게 <시발, 내가 불쌍해요?>라고 물었을 테고. 뭐 이런저런 투샷이 꽤 잡히긴 하는데 두 사람이 연애를 하는 건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건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시인의 청년을 향한 욕망은 초반에 작정하고 꽤나 직접적인 화법으로 묘사된다. 그러니까 욕망이 있었던 건 확실한데, 그걸 욕망으로 풀어나가기엔 연민이 더 앞서는 청년의 현실에 가로막혔다고 해야 하려나. 그때문에 가로막힌 것 같지도 않고... 꽤나 모호하면서도 다층적으로 해석되기에 흥미롭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시인이 집을 나가는 장면이다. 아내에게 차분하게 화를 내는 시인의 대사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스스로도 납득이 안가는, 온통 종잡을 수 없어져서 더 혼란스러운 감정을 훼손당했다고 하기엔 아내는 이 관계의 당사자이자 희생자니까 적절한 표현은 아니고, 표면적으로는 둘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3자에게 퍼뜨린 것에 대한 분노라고 해야 하겠는데 이것도 어찌 보면 적반하장으로 보이고, 그러나 시인의 대사에 공감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나로서는 최고의 장면이었다.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 했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는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 그걸 몰라 주는 아내에 대한 분노와 원망, 그래서 결국 감정이 폭발하고 마는 그 복잡한 심리를 대사와 연기가 어우러져 백미를 이룬다. 그 복잡한 심리를 몰라주고, 도저히 알아줄 수 없는 감정이긴 하지만, 그냥 둘이 계속 연애하면서 나랑 같이 살자고 애원하는 아내의 처절함도 완벽하게 합이 맞고. 그럼에도 집을 나서는 시인이 청년과 살러 나가는 게 아니라는 점도 참 미묘하고. 그런데 또 여자 문제냐는 어머니의 물음에는 그렇다고 하고. 딱히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청년에게 가지 않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참 미묘하다.

이걸 과연 불륜이라 해야 할지, 정신적인 간통이 더 용서받지 못할 간통이라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영화에 묘사된 한에서는 그 어떤 혐의도 없다. 그런데도 괴로워하고 상처받고 하니 불륜은 맞겠지. 사랑하기에 떠나 보낸다는 클리셰 넘치는 장면이 있는데도 서투른 두 사람이라 미워 보이지가 않는다.

워낙 다층적인 묘사를 하는 영화라 어떻게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작품이다.

굉장히 좋은 작품이란 뜻이다. 어떻게도 해석할 수 있는.

chapter 54 책이라는 존재 글 쓰는 마음

한동안, 아마존 킨들이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이대로 책이란 존재는 사라지는 건가 울적했었다. 뭐 내가 책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든, 실은 잡생각에 가까운 단상이었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책을 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을 내놓을 플랫폼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책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검색을 해 보다가, 내가 책의 물리적 존재에 집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을 수만 있다면 종이책이든 이북이든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책이란 단어가 존재하기도 전부터, 파피루스나 점토판 시절부터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바로 책이라는 존재의 본질인 내용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 내용을 채울 자신이 없을 때에만 비관할 것. 어떤 형태로든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으니까.

아마도 나는 그 어떤 내용을 창작해내는 작가, 저자로서의 정체성이 흐트러지는 것을 내심 두려워하고 아쉬워 했나 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작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두려움. 보다 솔직해지자면 내가 쓴 책의 저작 수익이라는 열매를 생전에 따먹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건 물욕과는 좀 다른... 건가? 아니겠지. 결국 글 써서 돈 벌고 싶단 얘기다.

세르반테스가 당대에 전 유럽에 문명을 떨치긴 했지만 본인은 거의 돈을 만지지 못했다는, 몇 백년 묵은 에피소드를 보고 안타까워서 든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 인생 자체가 너무나 극적인 세르반테스에게 감응한 것이려나... 사실 그렇게 온 인생이 고난으로 가득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이북은 누구나 글을 써서 돈을 만질 수 있는 세상을 열어줬다. 아마존의, 까놓고 말하자면 에로티카, 즉 야설을 이북으로만 판매하는 작가들은 진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영어를 쓰는 지역 그 어느 곳에서나, 뭐 주로 미국이지만, 자기 삶을 꾸리면서 틈틈이 자기 판타지를 써서 돈을 버는 일반인들이다. 어디선가 우스갯소리로 본 바에 의하면, 에로티카 시장의 작가는 대부분 스트레이트 여성이라고 한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양성애든, 남성 작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ㅎㅎㅎ.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티를 안내서 그렇지 야한 썰을 풀어내는 데엔 확실히 일가견이 있잖아? 우리나라 로맨스 시장도 엇비슷한 거 같긴 하다.

뭐 내가 에로티카 내지는 장르 소설을 쓰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를테면 여성 작가들이 휩쓰는 바닥에서 남성 작가로서 뭘 어찌 해야 좋을지 몰라 막막한 심정이 엉뚱하게 책이란 존재에 대한 사색으로 이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답답함과 우울함이, 본질은 책에 담긴 내용이라는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자마자 단번에 사라지고 말았으니, 천생 나는 그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하는 글쟁이인가 보다...

한편으로는 책의 내용을 중요시하고 물리적 형태에는 집착하지 말아야겠다는, 즉 이제 책을 좀 덜 사들여야겠다는 발상의 전환도 시도하고 싶어졌지만... 아직까지는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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