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6 - <토지>에 묘사되는 식민지 과도기 풍경 글 쓰는 마음

요즘 식민지 시기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는데, 비록 픽션이지만 <토지>에서 묘사된 당시 풍경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풍경을 가장 잘 묘사한 건 역시 당대에 창작된 작품들이지만, <토지>는 작가가 직접 그 시절을 경험해 묘사가 생생하기도 하고 워낙 긴 세월을 다루기 때문에 그 변화상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토지가 다루는 시기는 1897년에서 1945년까지. 이 시기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환경의 변모를 보면 정말 상전벽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우선 구천이와 별당아씨. 양반댁 마님이 하인과 야반도주했다는 것만 해도 충격적인데 실은 이들이 아버지가 다른 형수와 시동생 사이라는 더 큰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으로 서막을 연다. 구한말인데 벌써 설정이 심상치 않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다루기 힘든 소위 막장이라니...

하인과 야반도주한 어머니를 원망하고 증오한 서희였건만 재기를 위해 옮겨간 신흥 개척지 용정에서 역시 사랑을 택해 하인인 길상과 결혼한다. 사방천지에서 사람이 몰려들어 열린 지역이었던 용정에서의 서희의 선택은 그러나 이미 별당아씨 사건만큼의 충격을 주지 못한다.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뿐, 오히려 결혼을 결사 반대하던 서희의 스승 김훈장은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그런데 서희의 결단에도 한계는 있어서, 가문을 잇기 위해 아이들에게 가문의 성을 물려주고 자기 성을 바꾼다. 신분제의 과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선택이다.

양반인 이상현은 기생인 기화와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만주로 도피하지만, 그 딸인 양현은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에도 서희에게 거두어져 여의전을 나와 의사가 된다. 이미 교육기관은 학생의 신분을 따지지 않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학생의 신분에 대한 반발은 학부모들에 의해 사적으로 일어난다. 백정의 손자인 영광은 진주라는 소도시에서는 도저히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결국 익명이 보장되는 대도시 부산으로 가 학업을 이어가지만, 연애를 하는 바람에 퇴학당하고 여학생 부모로부터 온갖 모욕을 당한 끝에 도일해 방황하다가 색소폰 연주자가 된다. 작곡 능력도 꽤 출중하고 연주 실력은 일급이라는 묘사로 보아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학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흥미와 소질에 따른 선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주변의 시선은 딴따라라고 무시하고 본인도 자신의 직업을 떳떳하게 생각지는 않지만. 실제로 양현이 영광에게 공연을 보러가고 싶다고 하자 만약 공연에 나타나면 다시는 색소폰을 불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겪었던 수모와는 이미 거리가 먼 세상이 왔다. 지금으로 따지면 탑급 연예인인 셈으로, 사모하는 팬들까지 제법 있을 정도로 변모하는 신분제 사회를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기생의 딸인 양현과 백정의 손자인 영광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여자에 비해 보잘것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영광이 역시 만주로 떠나면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뭐 다른 복잡한 사연이 작용하기도 했고. 오늘날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는 남자가 여자보다 잘나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결말인 셈이다.

평사리에 계속 살았다면 살인자의 처인 어머니 임이네에 대한 굴레에 갇혀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했을 용이의 아들 홍이는, 간도에 갔다 와 진주에 정착하며 자연히 신분세탁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되고 당시로서는 신흥직업인 화물차 기사를 거쳐 다시 만주로 돌아가 사업가로 변신한다. 심지어 임이네의 전적을 알고 있는 김훈장의 딸이 과거에 개의치 않고 인물 하나만 보고 홍이를 사위로 선택하기까지 한다. 김훈장이 서희의 결혼을 반대하다 간도에서 쓸쓸히 사망한 것에 비하면 천지개벽 수준인 셈이다. 이미 양반끼리 결혼하는 세상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집안에 흠이 좀 있어도 본인만 반듯하면 문제삼지 않는 세상이 와 버렸다. 뭐 김훈장 집안이 몰락한 양반이라는 것도 이유긴 하지만. 즉 아직까지는 과도기라는 말이다. 홍이의 아버지 용이가 무당 딸인 월선과 맺어지지 못해 얼마나 피맺힌 인생을 살았던가 떠올려 본다면 그래도 대단한 변모다.

역시 살인자인 김평산의 아들 한복은 평사리에 정착해 갖은 수모를 겪고 결국 떠돌이 거지였던 여자와 결혼하지만, 사적인 수모에 불과할뿐 자식들은 고등교육도 받고 외지로 옮겨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간다. 한복의 아들 영호는 아내 숙이와 최참판댁 아들 윤국의 사이를 의심하며 열등감을 느끼지만 어쩐지 신분에 대한 열등감이라기보다는 재력에 대한 열등감으로 보인다. 최참판댁이라는 이름이 이미 지주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어차피 김평산도 몰락한 양반 출신이긴 하지만 살인자라는 굴레가 더 큰 바람에 신분이 아무 의미가 없는 집안이기도 하다.

양반이 변모한 대표적인 인물은 조병수다. 장애인으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조병수는 악전고투 끝에 소목장인이 된다. 양반 생활을 경험한 적 없는 조병수의 자식들은 부모가 양반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런 신분에 대한 자각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 한복의 아들 영호의 내력을 알면서도 거리낌없이 교류하기까지 한다.

중인 출신 역관의 딸인 명희는 조선 왕족 출신으로 일본 작위를 받은 집안 조용하와 결혼한다. 집안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조용하는 결혼을 관철시키고 집안에서는 철저한 무시로 일관한다고 나온다. 양반도 모자라 왕족 출신 고관대작이 중인 출신과 결혼하기에 이른 것이다. 명희의 결혼은 파탄을 맞지만 이건 다른 이유때문에...

워낙 등장인물이 많아 이것 말고도 더 있지만 기억나는대로 당시의 과도기적 풍경을 몇 가지 적어봤다. 전체 5부작인 <토지>는 각 부가 평균 10년 정도의 기간을 다룬다. 워낙 격변기라 각 부의 풍경이 전혀 다르다. 1부와 2부가, 2부와 3부가 전혀 딴판이고, 근대 문물이 자리잡은 3부부터 격세감이 좀 적어진다. 이 엄청난 격변이 채 50년도 되지 않는 세월동안 벌어진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계속 강조했듯이, 작품 내 등장인물들의 시대인식, 선입견, 사고방식 등등이 각 시기에 걸맞게 제대로 묘사된다. 저 시기에 저런 말도 안되는 사고방식을?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이 없다.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집필했는지 알 수 있지.

이런 과도기와 천지가 뒤집히는 한국전쟁을 거쳐 현대사회가 완성된 것이다. 전근대에서 근대를 거쳐 현대까지, 정말 정신없다. 동 시대를 다룬 서양문학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비록 학술서적은 아니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특히나 후반부는 작가 자신이 겪은 식민지 시절의 생생한 증언이기도 하니 당시 사회상이 궁금하면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작품 자체가 명불허전 걸작이지만.

chapter 75 - <사랑과 진실> 2부 글 쓰는 마음

mbc archive란 사이트가 생겨서 mbc에서 과거 방영된 추억의 프로그램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검색 기능은 좀 신통치 않아서 프로그램 제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제약이 붙긴 하지만...

예전에 언급했던 <사랑과 진실> 1부 대본집을 가끔 들춰 보면서 뒷이야기가 어땠었던지, 정확히 어떻게 끝났는지 몹시 궁금하던 참에 당장 가입하고 2부를 흥미진진하게 감상했다. 2부가 생각보다 인기를 못 얻었나 보다 하는 짐작과는 달리 어린 기억에는 굉장히 재미있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본다면 어떨까나 싶었지만, 확실히 재미 하나는 1부 못지 않았다. 별로 인기를 못 얻었나 보다 하는 건 그냥 막연한 추측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인기가 없었을 리가.

1부에서도 언니의 신분을 가로챈 동생은 진실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면서 그야말로 죽음과도 같은 불안 초조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했는데, 2부에서는 이러한 설정이 한층 강화된다.

표절했던 원작 만화에서는 양심의 가책이고 뭐고 없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악녀가 온갖 악행을 하다하다 몰락하는데, 김수현 작가는 악행은 아예 들어내고 이걸 서로 속고 속이는 심리극으로 바꿔 놓았다. 흥미진진하게 봤던 <청춘의 덫>의 심리극이 단번에 나온 건 아니었어 역시.

동생의 남편은 원래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이 날카로운 남자라 자기 아내가 불안 초조로 막 줄줄 흘리고 다니는 내가 가짜예요, 하는 일거수 일투족을 통해 진작에 자기 아내가 가짜임을 간파하고 있었고, 언니의 생모도 결국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설마설마 하던 진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그러나, 이제 와서 밝혀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그냥 묻어 버리려 한다. 어차피 언니는 유학까지 다녀와서 교수가 되어 괜찮은 남자 만나 잘 살고 있었으니까. 물론 언니의 결혼 생활도 겉보기와는 달리 우여곡절이 많다 ㅎㅎ

그러나 동생은 남편이 진실을 알고 있다는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남몰래 아이를 낳아 다른 사람에게 맡긴 과거가 있는 자기 엄마(그러니까 언니 생모)를 탐탁치 않게 여기며 늘 무시하던 남편이 갑자기 엄마와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을 보고 엄마도 남편과 진실을 공유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의심에 사로잡힌다. 그 결과 동생은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약물에 의지하며 되는대로 살아가게 되는데...

권선징악을 따르는 스토리는 아니지만 알고 보면 철저하게 권선징악을 따르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상대방이 내 정체를 알게 된 거 같은데 전혀 미동도 없고, 들켰을지 안 들켰을지 알 수가 없어서 더더욱 처절한 지옥을 겪는 모습을 보면, 이건 뭐 스파이물이 따로 없다. 서로 자신의 본심을 철저히 감추며 상대방을 끝없이 탐색하는... <무간도>를 방불케 한다 ㅎㅎ

부수적인 스토리긴 하지만 또 하나 인상깊었던 내용은, 동생의 남편과 동생의 사촌 언니(사실은 언니의 사촌)의 러브스토리다. 남편은 동생을 만나기 전에 사촌 언니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한다는 걸 아는 사이였다. 당연히 혼담도 오가던 사이였지. 그러나 재벌집 자녀였던 이 사촌 언니는 그 누구와의 결혼도 순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여인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집안 아들인 남편을 심하게 모욕한다. 우리 집안을 집어삼키려고 나와 결혼하는 거 아니냐고. 순전히 떠보려는 것이었고 사실은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심한 모욕을 받은 남편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아니라는 대답을 못 들은 여인은 절망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깨지고 남편은 다른 사람, 즉 사촌인 동생과 결혼하고 가업을 물려 받을 듯 보였지만 보란듯이 독립해서 너희 집안엔 처음부터 관심 없었다는 대답으로 대신한다.

뒤늦게 진심을 파악한 사촌 언니는 남편에게 자신이 실수했다고 사과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이제는 편안한 관계가 되어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여전히 서로에게 남아 있는 감정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며.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그러나 배려를 잊지 않는 남녀라... 아마 극중 묘사대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한다는 걸 아는 사이였으니 가능한 관계겠지. 아무튼 대단히 신선한 인물 설정이었다. 다른 작가라면 십중팔구 집착이나 증오가 뒤따랐을 텐데 그런 거 일체 없음이다.

꽤 오랜 세월 궁금했던 드라마의 결말을 알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이런 게 인터넷 세상의 혜택이란 거겠지. 없어져 버린 자료야 어찌할 방법이 없지만 남아 있는 자료는 속속 검색이 가능해지는 세상이라...

chapter 74 - literotica 단상 글 쓰는 마음

요즘은 막혔지만 어쨌든 여전히 우회해 방문해서 애독하곤 한다. 말하자면 영어권 야설 사이트다. 덕중지덕 양덕들이 제대로 덕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내 영어 실력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는 않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몇몇 단어를 이해 못한다고 해서 내용 파악을 못하는 일은 없다. 어차피 야설에 쓰이는 단어란 게 대체로 빤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의 본능인 성욕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훗.

그런데 정말 세상의 모든 성적 취향을 망라해 놓고 자기를 읽어달라고 뽐내는 온갖 글 속에서 기억에 오래 남고 되풀이 읽게 되는 것은, 역시나 스토리가 있는 글들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제대로 살린 글 말이다.

덮어놓고 돌입하여 그래픽을 방불케 하는 묘사로 뒤덮인 작품은 독자들의 평점도 낮다. 실감나는 묘사, 안타까운 갈등, 그리고 그러한 갈등이 일거에 해소되며 두 주인공이 참았던 감정을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작품들이 평점도 좋고 댓글도 줄을 잇는다.

이런 작품들을 읽다 보면 참으로 재야에는 숨은 고수가 많구나,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언제 출판사 문을 노크해도 손색없을 재능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맘껏 쓰는 고수들을 보면,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픽션계의 여전한 위력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소위 말해 썰을 풀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영원한 것이니까. 출판계로 가 봐도 요즘은 아예 이북만 출판하는 추세긴 하다. 음반 시장으로 따지자면 음원만 출시하다가 반응이 좋으면 음반도 출시하는 뭐 그런 시스템? 반응이 좋으면 그제야 종이책을 출판하는 것 같다.

이런 재야의 고수 절차를 밟은 가장 유명한 작가가 바로 그레이 시리즈 작가 되시겠다. 심심풀이로 저 유명한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SM 버전을 온라인에 연재하다가 반응이 폭발적으로 좋아 출판까지 하고 1억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재야의 고수의 완성형.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로 변변한 화제작 없이 침체되었던 영어권 출판 시장이 그레이 시리즈로 반짝 성장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읽어보고 싶었지만 19금이라 봉인되어 있는 바람에, 그렇다고 사서 읽고 싶지는 않아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이 정도 수위를 가지고 SM을 논하다니! 가소롭다는 투가 한국 독자들의 주된 반응이었던 걸로 안다. 한국 작가들은 훨씬 더 높은 수위로 실감나는 작품을 쓴다나.

그런데 내가 제대로 된 야설 사이트를 찾지 못해서인지 아직까지는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제대로 된 스토리의 야설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리테로티카로 가게 된 것이기도 하고. 그런 작품들이 올라오는 사이트가 있다면야 왜 굳이 영어로 야설을 읽고 있겠는가?

찾아 보자면 찾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긴 한데 아직 못 찾았다. 막말로 재미와 감동이 함께 한다는, 방송계에서 하는 흔하디 흔한,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데 어찌어찌 때로는 가능하기도 한 그 표현을 만족시키는 작품이, 아직까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귀여니 여파는 꽤나 강한지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가 요즘은 급식체로까지 진화해서, 귀여니에도 적응 못한 나로서는 적응이 더더구나 어렵다.

야설에 있어서도 문장의 힘이란!!

chapter 73 - 작가 서효원 글 쓰는 마음

알게 된 지는 꽤 됐는데 요즘 부쩍 떠오르는 일이 많은 작가다.

무협소설계의 전설 같은 인물. 서른 세 살로 요절할 때까지 128편이라는 엄청난 다작을 남긴 슬픈 작가다. 그의 집필 자체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부터 시작되었으니...

개인적으로는 대학 동문 선배기도 하지만 그런 실감은 사실 거의, 아니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고, 숙명처럼 글쓰기를 시작해 한껏 불태우고 사그러든 그의 글쟁이 인생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마음이 기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무협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 홍콩영화 전성기에 무협영화를 닥치는대로 꽤 많이 본 것에 비하면 신기한 일이긴 하다. 뭐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자면 고딩 시절 교실에 떠돌던 무협소설을 잠깐 훑어보긴 했는데 당시로서는 너무나 엄청난 섹드립에 놀라 집어던진 뒤로는 읽어본 적이 없다. 한창 혈기왕성한 시절에 그 정도 섹드립에 호기심을 느끼지는 못할 망정 충격을 받을 정도로 나는 참 순진한 학생이었다. 지금이라면 코웃음도 안 칠 순한 내용일텐데... 아니지 무협소설에 흔한 코드인 강간씬이었으니 순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러고 나서 내 관심은 온통 미스테리 소설로 쏠렸기 때문에 이럭저럭 무협소설은 읽을 기회가 없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내 주변엔 무협소설 읽는 인간이 단 한 놈도 없었으니...

당시 고소득 직업이었던 무협소설가란 직업 선택은 병원비 마련도 목적이었겠지만, 병약한 몸으로 마음껏 활동하지 못하는 본인의 처지에서 대리만족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직업이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번개처럼 움직이고 새처럼 공중을 날고, 강호를 내집처럼 넘나들고... 평범한 운동신경을 가진 사람도 선망하는 인간상이 바로 무협소설의 주인공 아닌가. 늘 죽음의 공포를 간직한 채 살아야 했던 서효원 작가로서는 몹시 간절한 인간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뭐 별로 건강하지 못한 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간직했을 간절함이 와닿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글 쓰는 기계처럼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남긴 그와 달리 이렇게 한 줄도 못 적고 있는 것이겠지. 내 간절함의 무게는 그에 비하면 솜털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간절함이라기보다는 우울증에 의한 무기력함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긴 한데... 우울증에 가장 무서운 독이 왜 그걸 못하냐고 다그치는 것이라 들었다. 스스로나 타인이나. 그런 다그침이 점점 더 마음을 좀먹게 한다고 하니... 그래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려 조심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

그의 작품을 읽으며 그의 간절함의 흔적을 찾아볼까 싶어 서점에 검색을 해 보았더니 대부분의 작품이 절판되고 없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잊혀져 간다는 것, 이 또한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시간까지 그가 도모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잊혀진다고 위안을 삼고 싶다.

서효원 작가의 기일은 아니지만, 한해의 마지막 날 왠지 기리고 싶어 적어본다.

chapter 72 - 심심해서 해 보는 작법 분석 4 : <여곡성> - 원작이 막강한 작품을 각색할 때의 딜레마 글 쓰는 마음

굉장히 어릴 때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어리진 않았던 그 옛날, 벌벌 떨면서 보았던 전설의 그 영화 <여곡성> 리메이크작이 소리소문없이 망하는 분위기다. 그렇게 재밌게 봤던 나도 전혀 끌리질 않았으니까 뭐.

이 영화의 패인은 별 거 아니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별로 무섭지 않고, 원작을 기대하고 간 사람들이 기대하던 내용도 아니고.

감독이 재해석에 대해 뭐라고 인터뷰한 걸 봤는데 웃음만 나왔다. 다 필요없다니까!! 그 무서웠던 시어머니 포스만 보여줘 제발!! 무슨 능동적인 여성상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니까!!

원작의 그 무서웠던 장면들이 별로 안 나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관람을 포기한 나같은 원년 멤버들이 아마 수두룩할걸?

물론 리메이크를 하며 재해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아니 대부분 필요하지. 하지만 <여곡성>처럼 원작이 강렬한 작품은 그럴 필요가 별로 없다. 원작 자체가 완전체인데 뭘 더 얹는담? 그냥 이 완전체를 어떻게 하면 더 완전하게 만들어야 좋을지 디테일만 손 보면 된다.

예전에 한 번 본 뒤로 재감상한 적은 없지만, 분명 지금 보기엔 유치한 장면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런 장면들을 안 유치하게 손 보되, 가장 강렬한 공포씬들을 둘러싼 전후 관계는 건드리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도대체 어떤 물건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감독은? 이건 공포영화란 말이다!!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될 정도로 엄청난 작품에서 어떻게 공포씬을 가지치기할 발상을 했을까? 처음부터 망하는 길로 제발로 걸어들어가려 한 셈이다.

사실 이건 창작자의 딜레마다. 아무리 리메이크작이라 해도 어딘가에 본인만의 인장을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 자기가 생각하기엔 이걸 내가 좀 손보면 색다르게 나만의 인장이 작품에 묻어나지 않을까 싶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원작의 흔적을 희박할 정도로만 남기고 모조리 손대는 거다.

셰익스피어의 가장 멋진 각색작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이라든지, <제인 에어>의 가장 훌륭한 재해석 작품이라 평가받는 작품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라든지,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꽤나 재치있는 작품이라 생각하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바로 <오만과 편견> 각색작품이라든지... 원작 파괴 수준으로 자기가 재조립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제목에조차 흔적이 없잖아.

그렇게까지 대담하게 할 용기는 없었던 감독이(아마도 투자자의 등쌀 때문에) 그나마 소심하게 손을 대 본 결과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온 게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니 뭐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냥 감독이 생각하기에 이렇게 만드는 게 가장 무서울 것 같다고 만든 결과물일 뿐이리라. 어차피 저예산으로 본전치기하는 장르 특성상.

그러나 모든 감독이 <곤지암>처럼 저예산으로 뽑아먹을 수 있는 재주를 가진 건 아닌거고...

이런 걸 보면 리메이크도 원작 창작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인데 또 그렇다고 높게 쳐주지도 않거든. 참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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